초등학교 시절부터 장래 희망은 단 하나, 건축가였다
김창범 건축가
유지연 인턴 기자
2006년부터 한국건축에서 8년 동안 근무하다 몇 달 전 해안 건축으로 자리를 옮긴 김창범 건축가는 큰 규모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건축 기업에서 일하면서 얻는 장점으로 꼽는다. 부티크 형식을 취한 작은 스튜디오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그 규모나 종류에 한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부터 건축가가 되고 싶었느냐는 질문에 "초등학교 시절부터 장래 희망을 적어내는 칸에 집을 짓는 사람이라고 썼다"고 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결국 건축 설계를 담당하는 건축가가 되었으니 어릴 적 꿈을 이룬 셈이다.
Interview 김창범 해안건축 설계본부 선임
"기능과 디자인이 부딪히면 디자인을 우선시한다"
건축가가 되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나?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거나 무엇을 만드는 손재주가 있는 편이었는데, 막연하게 집을 짓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건축 디자이너와 건축가는 다른 표현인가?
스스로 건축 디자이너라 소개하는 건축가도 더러 있지만, 정확한 명칭은 ‘건축가’ 혹은 ‘건축사’다. 디자인만 하는 건축가는 없기 때문이다. 시게루반(ばんしげる)처럼 건축물의 디자인만 담당하고 설계나 시공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는 대가들도 있지만 그들 역시 이미 과거에 건축의 기초 과정을 체득한 후 디자인에만 관여하는 경지에 오른 것인 만큼 건축가라 부르는 것이 맞다고 본다.
한국건축에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사내 공모전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다.
대구의 한 유치원을 디자인하는 프로젝트였는데, 기독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이라 교회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두 개의 건물을 각각 분리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나는 1층부터 3층은 유치원으로, 4층은 교회로 하나의 건물 안에 두었다. 그 건물을 제외한 나머지 터를 널찍한 놀이터로 사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건축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많은 선배들 중에서도 신입이었던 나의 안이 채택되면서 스스로 큰 자부심을 느꼈다.
설계를 담당했던 IK그룹 사옥은 국제 공모전에서 수상한 것으로 알고 있다.
매해 스페인에서 열리는 세계 건축 축제(World Architecture Festival Awards)에서 건축가 특별상을 받았다. 사옥이 위치한 인천은 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으로 이에 착안해 우리 말로 ‘통(通)’이라는 콘셉트를 잡고 바람에 순응하는 건물을 디자인했다. 클라이언트 쪽에서는 특히 큰 지하 공간을 원했다. 그래서 지상 건물은 가로로 배치하고 지하 공간은 세로로 길게 뉘여서 바람길을 열어주었다. 건축을 의뢰한 곳이 건설 폐기물을 재생해 골조로 만드는 친환경 기업이었기에, 사옥이 기업의 철학과도 잘 맞아 떨어졌다.
추구하는 건축 철학을 들려달라.
단순한 디자인을 선호하고, 만약 디자인과 기능이 부딪힌다면 디자인을 우선시하는 편이다. 또 개인적으로 고(古)건축을 좋아한다. 특히 수덕사 대웅전을 좋아하는데, 소박하고 숭고한 한국의 전통미가 대웅전의 자태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디자인에 한국적 요소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인가?
한국적인 형태를 굳이 반영하려다가 작품이 이상해지는 경우를 많이 봤다. 완전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짓지 않는 이상, 형태를 흉내 낸다고 해서 전통 건축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오히려 정신을 담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한국의 가옥은 중정이나 방끼리 연결이 되어 커뮤니케이션이 잘된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디자인인데, 익숙해져 있기에 특별히 전통이라고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존경하거나 닮고 싶은 건축가가 있다면?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다. 건물만 봐도 감동이 밀려 온다. 세상에 이런 건축가가 다 있다니.
미스 반 데어 로에처럼 나중에 가구 디자인에 도전할 생각도 있나?
아직까지는 생각해 본 적 없다. 가구의 철학과 건축의 철학은 또 다르니까. 한 분야에 정통한 대가이기 때문에 분야를 옮겨갈 수 있었던 것이지, 아무나 기회가 온다고 해서 쉽사리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지금은 주어진 일에 충실하면서 연륜과 내공을 쌓을 때라고 생각한다.
디자인과 설계를 하며 와콤 태블릿은 어떻게 사용했나?
태블릿의 큰 화면을 통해 다른 이들과 함께 보면서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전에는 종이에 스케치나 설계를 하다가 수정 사항이 생기면 새로운 종이를 꺼내 다시 그리곤 했다. 하지만 태블릿을 사용하니 기존에 저장했던 디자인이나 도면을 불러와서 그 위에 바로 수정할 수 있는 점이 무척 편리했다. 모니터 다음으로 캐드(CAD) 작업을 돕는 제2의 도구로 상당히 유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