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립형 애니메이션 감독이에요”
가장 아날로그적인 작업 VS 가장 디지털적인 생존, 홍학순 감독
1998년 겨울, 스물 여섯 살이었던 그는 동그라미를 그렸다. 동그라미를 그린 종이들이 방에 가득 찼지만 그리고 또 그렸다. 왜냐고? 동그라미들의 생김 세가 저마다 다른 것이 신기해서. 그러던 어느 날 동그라미들에서 토끼가 탄생하더니 연이어서 다양한 캐릭터와 공간들로 확장됐다. 2001년, 이 모든 과정을 1000페이지로 압축해서 책으로 만들고 ‘토끼의 설계도’(hackpage)라고 이름지어 줬다. 그러게 하나의 세계가 형성되었다.
애니메이션 ‘띠띠리부 만딩씨’ ‘계속 달리는 잉카씨’ 의 홍학순 감독의 화풍은 ‘유아적’이다. 어린아이가 즐겁게 놀고 그리는 세계와 비슷하다. 크레파스로 즐겁게 낙서를 한듯한 천진난만한 그림 체, 예측 불허로 뛰어 노는 캐릭터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말이 필요 없는 단순하고 위트 있는 행동, 원시인과 펭귄이 북극에서 만나서 친구가 된다는 현실 불가능한 설정을 거부감 없이 따뜻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능력은 홍 감독의 가장 큰 능력이다.
홍 감독은 계원예대와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하며 순수미술과 영상을 전공했다. 그러나 홍 감독은 중 고교 시절에 입시 미술을 거쳐 수능을 보고 스무 살에 대학에 진학하는 보통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걸었다. 홍 감독은 주입식 교과 과정에 회의를 느끼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다. 이후 단 한번도 탈선하지 않고 고요한 시간을 보내다 22살 어느 날 밤 하늘의 별을 보고 있는데 문득 그림이 그리고 싶었다. 미술을 공부하기로 결심, 검정고시에 패스해 이십 대 중반이 되어 미대에 진학했다.
미대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에 돌입해 자기 세계를 만들어 간다. 2001년 ‘토끼의 설계도’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자신의 그림들은 영상으로 표현해야 더 적합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학 졸업 후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 영상을 공부했다.
홍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으로 단편 애니메이션 ‘띠띠리부 만딩씨’를 제작했다. 이 작품은 인디애니페스트(한국독립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러닝타임 7분 가량의 ‘띠띠리부 만딩씨’는 더운 지방에 사는 원주민 만딩씨와 북극에서 펭귄과 친구가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말도 통하지 않고 행동도 전혀 다른 두 개체가 만나 서로 행동과 마음으로 친구가 되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북극이 가장 따뜻한 곳으로 변한다.
“와콤 태블릿으로 5분만에 완성한 작품도 있어요”
홍 감독 작업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오는 것은 인튜어스1 모델이다. 그가 처음 태블릿의 매력에 빠지게 된 건 2005년 국내 최초 살사 교본 ‘신나게 배우는 살사 댄스’ 일러스트 작업을 하면서부터다. 매우 정교하게 살사 동작을 표현해야 하는 데 그 방법을 고민하던 중 살사 교본 저자 분이 신티크 첫 모델을 선물하면서 인튜어스까지 함께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정교하게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이나 포토샵 보정 때 꼭 필요하다는 장점과 더불어 작업 시간을 굉장히 줄여줘요. 지난 2010년 인디애니페스티벌에서 소개됐던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모여서 만든 릴레이 애니메이션 ‘토끼와 거북이라고 말해도 모르잖아’작업에 참여했는데 제가 맡은 분량은 20초정도 됐어요. 와콤 태블릿으로 5분만에 완성할 수 있었어요. 태블릿이 없었으면 그러게 짧은 시간에 역동적인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건 불가능했을 거에요. 이런 매력 때문에 태블릿을 한 번 사용하면 계속 활용하게 되요.”
최근 페이스북을 활발하게 하는 홍 감독에게 태블릿은 더욱 귀한 존재가 되었다. 페이스북에 그림을 통해 팬들과 자주 소통하는 홍 감독은 자신의 페이스북(http://www.facebook.com/haksoon.hong) 카툰 작업들을 주로 와콤 태블릿으로 진행한다. 손 동작의 움직임과 묘사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그의 작품 활동에서도 태블릿은 귀한 존재다.
“세상이 어두울수록 더 밝은 이야기를 부르고 싶어요”
올해 홍감독은 다양한 작업 계획을 두고 있었다. 최근 홍 감독은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에이전시 매시즘이 기획한 ‘60초 애니’ 작업에 참여 중이다. 60초 애니는 10여 명의 애니메이션 감독을 섭외해 각각 제작한 60초짜리 애니메이션을 모아 DVD도 만들어 교육용 등으로 보급하고, 애니메이션 상영회도 갖는 프로젝트다. 홍 감독은 현재 이 작품을 기획 중이며 8월 초 경이면 제작 단계로 들어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또 홍 감독은 현재 ‘고래가 그랬어’에 연재 중인 ‘전우주의 친구들’ 1편을 영상 애니메이션 ‘본능 미용실’이라는 제목으로 만들고 있다. ‘전우주의 친구들’은 '말과 언어와 생김새가 달라도 서로 다른 개성에 매료되어 열린 마음을 나누는 친구'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홍 감독은 이 작품을 오는 9월 오픈 라이선스 보급 활동 등을 펼치는 CC코리아에서 주관하는 국내와 유럽 국제 학술 발표 쇼케이스에 한국 대표 작품 중 하나로 상영할 계획이다. 이 작품은 창착 프로젝트 소셜 펀딩 사이트 ‘텀블벅(www.tumblbug.com)’에서 팬들의 후원금을 받아 제작 중이다. 단순히 후원금만 제공 받는 것이 아니라 후원자들에게 캐릭터를 만들어 주어 작품 내에 참여할 기회를 준다.
“개인이 애니메이션을 만들면 일반적으로 독립애니메이션 이라고 불러요. 그보다는 ‘자립’ 애니메이션 감독이 저에게는 적절한 표현 같아요. 어디에 기대기 싫어서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자영업이 좋아서 혼자 하는 것이거든요. 제가 만들고자 하는 것을 알리면 팬들이 후원자가 되어줘요. 제 작품을 좋아하는 분들과 즐거움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것이 꿈이에요.”
세상이 어렵고 힘들 수록 더욱 밝고 따뜻한 것을 만들고 싶다는 홍학순 감독.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된다.
홍학순 애니메이션 감독 프로필
2009 [계속달리는 잉카씨], [띠띠리부 만딩씨] 단편애니메이션 제작
2009년 인디애니페스트 인디의 별 - 대상 수상 (띠띠리부 만딩씨)
2009년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이 뽑은 앵콜 상영작 (띠띠리부 만딩씨)
2010 다음 어워즈 소셜네트워크 요즘 부분 수상. "우유각소녀"
현재 [전우주의 친구들] 시리즈 애니메이션과 카툰 제작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