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부터 2020년대 중반인 지금까지, 디지털 툴 덕분에 가능했던 공모전, 디자인 프로젝트, 콘텐츠 제작의 현장을 지나오며 내가 겪은 ‘표류의 기록’을 풀어보려 한다.
시대의 물결에 흔들리되 가라앉지 않게 해준 닻은 언제나 스토리텔링이었다. 그리고 그 스토리는 오늘, 디지털 드로잉을 업으로 삼으려는 누군가에게 실전 가이드가 되길 바란다.
아날로그 근육으로 시작해 디지털로 전환하다

90년대 초중반, 시각디자인과에는 아직 컴퓨터가 없었다. 되돌릴 수 없는 수작업은 노동의 가치와 시간의 무게를 몸에 각인시켰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하니 커리큘럼은 전면 디지털로 바뀌어 있었다. 매킨토시, 와콤 타블렛, 포토샵/일러스트레이터, 페인터… 낯선 툴을 익히는 사이 디지털은 뉴노멀이 되었고, 관성에 머무른 이는 변화를 놓쳤다. 반대로 상상력의 한계를 밀어붙인 사람에겐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포인트]
디지털 전환은 ‘툴 바꾸기’가 아니라 작업 사고방식의 전환이다.
되돌리기(Undo)가 가능해질수록, 더 대담하게 실험해도 된다.
졸업 위기의 시대, 콘텐츠로 방향을 틀다


1998년 IMF 시기, 졸업생 전원이 취업하긴 어려웠다. 나는 캐릭터·애니메이션 공모전으로 활로를 찾았다. 졸업 작품 ‘오구’의 시각화 작업을 캐릭터로 재구성한 카오스패밀리, 귀신들의 모임 재귀모로 큰 상을 받으며 커리어의 첫 톱니가 맞물렸다. 둘 다 맥과 디지털 툴로 만든, 내 첫 디지털 캐릭터였다.
카오스는 나의 캐릭터 이력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가난한 졸업생 신분이었던 나는 공모전 작품 출품을 위해 대형 컬러 프린트 값이 없어 디자인회사에 다니고 있던 여자친구에게 몰래 출력을 부탁하고(취업한 지 1주일 정도여서 프린트 방법도 몰라 진땀을 뺐다), 베프의 도움으로 제일 싼 액자에 끼워 출품했다. 공모전 주최 측에서 연락이 왔다. “공모전 출품을 이렇게 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Basic, Application 두 개 판넬로 나눠서 내야지. 한 장에다가 다 끼워 넣으면 어떡해요? 판넬 다시 정상으로 만들어 오시면 상 드리겠답니다.” “헉, 이게 꿈이야 생시야?” 뒷이야기는 88서울올림픽 캐릭터 ‘호돌이’를 만드신 김현 선생님께서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작품에 상을 줘야 공모전의 의의가 있다”고 강력히 주장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꼭 유명해져서 찾아봬야지!’ 다짐했다. 선생님,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인사이트]
초기 커리어에서 공모전은 포트폴리오의 가속장치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역시 알맹이(내용)이다.
단, 상보다 중요한 건 “내 세계관을 압축해 보여주는 1–2개의 대표 IP”를 만드는 일이다.
‘유명세’보다 스토리 — 김국진 캐릭터 프로젝트

닷컴 붐 시절, 로고·심볼·캐릭터 외주가 폭증했지만 저가 경쟁으로 지쳤다. 그래서 스토리텔링 중심 캐릭터를 만드는 팀에 합류했다. 첫 프로젝트가 당시 최고 인기 개그맨 김국진 캐릭터. 당시 연예인 캐릭터는 캐리커처 수준에 머물렀는데, 우리는 ‘빵빵 터지는 세계 여행’이라는 컨셉으로 100장면을 설계했다. 적용 영역도 ‘빵’으로 좁혀 집중했다. 캐릭터 상품화는 설득 끝에 삼립식품과 함께 스티커 삽입 + 애니메이션 CF까지 밀어붙였고, 1999년 ‘김국진 캐릭터 빵’은 부도 위기 회사를 되살릴 만큼 ‘빵’ 터졌다. ‘스티커 빵’ 신화의 시작이었다.
실로 체감이 되었던 순간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우유를 사고 계산하려는데 편의점 알바생의 계산대 옆에 쌓여 ‘국찐이빵’… 모두 개봉된 채로 쌓여 있었다. 띠부띠부 스티커만 챙기고 빵은 버리는 초유의 풍경. 그 빵을 질리도록 먹던 편의점 알바생…
[실무 팁]
IP × 제품 카테고리의 적합성을 좁혀라.
모든 굿즈에 다 쓰기보다 ‘핵심 카테고리’ 하나에 세계관을 응축하면 몰입도가 폭발한다.
[도구 메모]
디지털 애니메이션은 당시 셀 방식 대비 절반 이하의 비용으로 설득력을 만들었다.
오늘날에도 “제작비 구조”는 설득의 핵심 언어다.
다시 학생이 되다 — 1인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가능성

프로젝트의 성공을 뒤로하고 나는 디지털 애니메이션 스쿨에 입학했다. 페인터, 애프터이펙트, 프리미어로 연출–작화–편집을 전 과정 학습하며 단편 ‘도어-인간의 문’을 만들었다. 인간의 욕망이 지구를 훼손하고, 그럼에도 지구가 인간을 다시 잉태해 ‘새로운 탄생’으로 나아간다는 서사. 여러 영화제와 기획전에 초청되며 90년대를 마무리했다.
초반의 현상은 참 웃프기도 하다. 시작할 때 동기는 60명. 그런데…10일 만에 단 10명만 남았다. 다행히 그 10명은 끝까지 함께 했다. 시작 첫 주는 애니메이션의 역사와 흥미로운 작품 이야기가 끝나고 실전 시작. 그 때 강의를 듣던 사람들은 아마도 배우는 프로그램들을 지금의 AI쯤의 역할을 해주는 것으로 기대했던 것 같다. 현실을 체감하고 포기하는 데는 3일이면 충분했다.
[루틴 힌트]
툴 학습(스킬)과 서사 설계(스토리)를 매일 1:1로 배분하라.
예를 든다면 오전엔 드로잉/합성 스킬, 오후에는 시나리오와 콘티.
스킬만 늘면 공허하고, 스토리만 다지면 실행력이 떨어진다.
스토리텔링이 나를 떠밀고, 또 건져냈다
국가 부도와 급격한 디지털 변화를 지나도 창작을 지속할 수 있었던 동력은 하나, 이야기를 만들겠다는 욕망이었다. 디자인도 캐릭터도 애니메이션도, 결국 중심엔 스토리텔링이 있었다. 거대한 파도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게 해주는 나침반—그것이 스토리다.
[커리어 노트]
1. 브랜드/클라이언트형 캐릭터에는 ‘활용 시나리오’가
2. 작가형 IP에는 ‘세계관의 밀도’가 필요하다.
둘 다 ‘서사 설계 문서(1–2p)’로 정리해두면 협업과 피벗이 빨라진다.
다음 편 “Part 2-스트로텔링으로 새로운 문을 열다”에서는 밀레니엄 이후 내가 디자인 문구–티셔츠 브랜드–그래픽 노블–그림책–웹툰으로 확장하며, 디지털 드로잉을 지속 가능한 업으로 바꿔낸 선택과 루틴을 공유한다.
툴은 바뀌어도, 스토리는 진화한다. 그리고 스토리를 움직이게 하는 건 매일의 손과 눈이다.
To-Do(독자용)
하나. 지금 작업 중인 캐릭터/작품의 한 줄 세계관을 써보자.
둘. 적용할 핵심 카테고리 1개만 골라 콘셉트–장면 10컷으로 압축하자.
셋. 이번 주엔 스킬 연습과 스토리 설계를 1:1로 배치해보자.
작가 소개 및 포트폴리오 링크
SEHO(양세호) 작가
그래픽디자인과를 졸업 후 캐릭터 디자인으로 경력을 쌓고, 문구, 티셔츠, 관광 디자인 브랜드를 론칭하여 국내외 판매를 하였습니다. 2015년 부터 그래픽노블, 그림책, 웹툰, 디지털 애니메이션을 창작하는 작가로 스토리텔링 작업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콘텐츠진흥원 다양상 만화지원사업에 선정되어 환경만화 <사인>을 출판사 문학동네의 매니지먼트로 작업하고 있고, 브런치 플래폼에서 <복희의 떡볶이> <왔따맨> <호야사진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 캐릭터 디자인 <국찐이빵>, 문구브랜드 <큐몬>, 티셔츠브랜드 <티왕>
- 관광브랜드 <n서울타워>, 그래픽노블 <복희의 레시피>, 그림책 <복희의 키친>
- 디지털애니메이션 <도어>, <복희의 키친>등의 디자인 & 출간 작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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