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디자인은 선 몇 개로 설명할 수 있는 디자인이다
봄기운이 완연한 4월, 와콤이 성수동에 다시 등장했습니다. 이번에는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 브랜드 포르쉐와 함께였는데요. 와콤 타블렛과 포르쉐라니, 의외의 조합이라고 생각되시나요?
많은 산업디자인 직군, 특히 자동차 디자인 분야에서도 와콤의 타블렛이 디자이너들의 손끝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성수동 포르쉐 나우 행사장에서 열린 [포르쉐코리아 디자인마스터클래스] 에서는 포르쉐 본사의 디자인팀 ‘스타일 포르쉐’의 시니어 엑스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중이신 정우성 디자이너를 위한 파트너로 와콤 신티크 프로 27이 활약하게 되었습니다.
정우성 디자이너는 브랜드 아이덴티티(Brand identity)와 프로덕트 아이덴티티(Product identity)를 적절하게 조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사람들이 차를 봤을 때 한 눈에 알아보는 것이 '브랜드 아이덴티티'이고, 헤드라이트, 그래픽 등 디테일을 통해 모델을 구별할 수 있는 게 '프로덕트 아이덴티티'입니다.
디자인 프로세스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요, 첫 번째는 프로포션(Proportion), 두 번째는 스타일링(Styling), 마지막은 디테일(Detail)입니다. 프로포션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과정이며 스타일링과 디테일 과정에서 세세한 부분을 잡아나가고 있습니다. 정 디자이너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을 강조하며, 포르쉐 디자인 역시 이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고 해요.
포르쉐 디자이너들은 어떤 일을 할까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책상 앞에서 웃으면서 토론하는 풍경은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조립도 하고, 용접도 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회사 내에서 취미 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프로그래밍이나 차를 분리해서 분석하는 작업, 실제 차량의 크기를 재현한 클레이 작업 등 정말 다양한 일을 하고 있어요. 물론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것은 디자이너가 꼭 해야 하는 필수단계 스케치 드로잉입니다.
포르쉐를 포르쉐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정우성 디자이너는 바로 포르쉐의 철저한 디자인 철학이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다양한 포르쉐 차종은 공통된 브랜드 정체성을 공유하지만 개별 모델의 정체성도 강하기 때문에 새롭게 디자인할 수 있는 요소가 많습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 각각의 차에 개성을 입히는 것이 바로 포르쉐의 디자인 철학입니다.
금전적인 이유, 경쟁사와의 관계, 안전 관련 법규 등으로 인해 항상 스튜디오가 원하는 디자인을 펼치기란 쉽지 않은데요, 디자이너의 역할은 이런 상황에서도 최선의 해결 방법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포르쉐의 디자인 DNA를 충실하게 지키면서 균형을 잘 조합해 만든 포르쉐는 차만 봐도 상당한 매력을 느낄 수 있죠. 사람에게 '꿈'을 전달하는 디자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디자인을 실제 차로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가장 힘든 요소는 바로 법규입니다. 나라마다 안전 법규가 모두 다르기에 이를 만족시키는 디자인이 어렵기 때문이지요. 자동차 브랜드의 디자인이 서로 비슷해지는 현상 또한 법규를 지키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일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전부 충족한 법규를 한국에서만 맞출 수 없어서 디자인을 수정한 경우도 있다고 하네요.
정우성 디자이너에게 가장 애착이 큰 프로젝트는 '919 스트리트'입니다. 919 스트리트는 '919 하이브리드' 레이싱카의 기술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모델로, 외관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정 디자이너의 손을 거친 의미 있는 모델입니다.
정우성 디자이너는 강연 중 언급한 특징을 그대로 담은 스케치를 시연했습니다. 이번 스케치에서는 지난 10월 출시된 와콤 '신티크 프로 27'을 사용했어요. 넓은 스크린 위에 와콤의 펜 기술력을 담은 와콤 프로 펜 3로 5분 가량의 간단한 스케치를 진행했습니다.
정우성 디자이너는 '좋은 디자인은 선 몇 개로 설명할 수 있는 디자인이다'라는 문장을 언급하며 포르쉐가 바로 선 몇 개로 표현될 수 있는 자동차 중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자동차 디자인의 핵심 뷰인 사이즈부터 시작해서 펜더의 형상, 일자형 헤드라이트, 볼륨감 등 포르쉐 차량의 특징을 스케치에 잘 담아냈어요.
와콤 신티크 프로 27은 현존 액정타블렛 중 가장 뛰어난 스펙을 자랑하는 제품으로, 120Hz의 주사율과 높은 색재현율을 자랑하는 고성능 디스플레이 위에 와콤펜 기술력이 탑재된 와콤 프로 펜 3를 사용해서 드로잉을 할 수 있는 프로를 위한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입니다. 신티크 프로 27과 함께 탄생한 프로 펜 3에는 와콤만의 기술인 EMR(전자기공명)이 적용되어 배터리가 필요 없고, 충전할 필요 역시 없어서 갑자기 영감이 떠올랐을 때 드로잉을 하고 싶은 창작자들에게 적합한 제품이에요.
특히 라이브 드로잉을 진행한 정우성 디자이너는 독일 현지에서 신티크 프로 24를 작업 파트너로 사용하고 있는데, 신제품으로 출시된 신티크 프로 27이 궁금하던 차에 더욱 발전된 놀라운 기술력에 놀라워했다는 후문입니다.
간단한 선만으로 자동차 형태가 갖춰지는 모습은 청중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클래스를 마친 후에는 참석자들과의 Q&A 시간이 열렸습니다. 특히 마지막 세션에서는 정 디자이너처럼 디자이너를 꿈꾸는 대학생들이 자리를 빛내주었는데요, Q&A 시간에는 현업 자동차 디자이너를 향한 지망생들의 열정적인 질문이 쏟아지면서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졌어요. 클래스에 참여하진 못했지만, 포르쉐와 자동차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와콤 팬분들도 함께 보실 수 있도록 알찬 질문과 답변 중 몇 가지 내용을 발췌해서 소개할게요.
Q. 직업 특성상 다른 사람들의 포트폴리오를 볼 일이 많습니다. 지원자의 포트폴리오를 보면서 기대하는 부분이 따로 있나요?
A. 하루에도 수십 개의 포트폴리오를 받는데, 가장 아쉬운 포트폴리오는 '그림도 잘 그리고, 기본기도 잡혀 있지만 개성이 없는 포트폴리오'입니다. 많은 학생들이 핀터레스트 등 인터넷에서 그림을 보면서 좋은 테크닉이 있으면 해당 부분을 갖다 쓰게 되는데, 연습하면서 기본기를 늘리는 것은 좋지만 카피하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 나아가서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해요. 포르쉐에서 기본기가 약한 독일 학생들을 인턴십으로 뽑는 이유도 바로 남들에게는 없는 개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보는 스타일이네? 뽑아서 일을 시켜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본인의 색깔과 개성을 찾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하는 게 좋을까요? 차별화된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인터넷만 보지 말고 새로운 것들을 경험해야 합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여행, 뮤지엄, 전시 등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모두가 볼 수 있는 것에서 같은 영감을 받는다면 결과물도 비슷하게 나올 테니까요. 만약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Q. 현업에서 다른 실무자들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는 엔지니어링에 대한 지식이 필요할 것 같은데, 어느 정도의 지식이 필요하고, 또 어떻게 함양할 수 있나요?
A. 디자이너로서 자주 하게 되는 고민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엔지니어라고 해도 법과 기술은 계속 바뀌고, 오늘 맞는 것이 내일 틀리게 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자동차를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황이나 환경이 바뀔 때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지요. 또, 스튜디오 내에서는 디자이너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전문가와 함께 업무를 진행합니다. 전문가가 있는데 굳이 모든 것을 기억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업에 충실하되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을 통해 그때그때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이해력을 기르는 것을 추천합니다.
실제 업무 과정에서 엔지니어는 디자이너에게, 디자이너는 엔지니어에게 원하는 것을 전달합니다. 그 과정에서 조율이 계속됩니다. 조율하는 과정에서 디자이너 역시 엔지니어링에 대한 이해도가 필요하긴 합니다. 디자이너가 볼 땐 가능할 것 같은데, 엔지니어 입장에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럴 때 브레인스토밍을 같이 거치는 거죠.
Q. 실무에서 컨셉과 비주얼라이징 스킬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요?
A. 훌륭한 컨셉이라도 시각적으로 표현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시각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컨셉을 무시하라는 게 아닙니다. 컨셉을 잘 표현하는 것의 연장선이어야 하죠. 미팅 때 힘을 들이지 않고 그린 그림이나 집에서 아이디어가 생각나서 갑자기 그린 그림이 더 좋은 반응을 얻을 때가 있는데, 항상 컨셉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컨셉을 생각하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고민하게 되고, 어느 순간 아이디어가 튀어나올 수 있어요. 컨셉을 생각해서 그림으로 표현을 하고, 또 그 그림을 다시 보면서 컨셉을 재정비하면서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게 되죠. 일방통행이 아니라 서로 탁구공을 핑퐁 주고받는 듯한 스타일로 접근하는 것이 좋습니다.
Q. 정우성 디자이너가 개성을 갖게 된 계기 또는 인상 깊었던 경험이 궁금합니다.
A. 저는 경기에 나오는 차를 좋아해요. 가장 좋아하는 자동차 모델 중 하나가 포르쉐 917이고, 그래서 테스트할 때 밥도 안 먹고 구경을 가기도 했었죠. 그런 차를 디자인하는 꿈과 상상을 항상 해왔어요. 제가 작업했던 919 스트리트 역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차를 재해석한 거잖아요, 그 기회가 왔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항상 자신이 추구하거나 상상하면 이루어진다는 개념이 중요해요. 무조건 믿는다기 보다는, 디자인을 할 때 '포르쉐의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을 꾸고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거든요. 포르쉐 사장님도 말씀하신 '꿈꾸는 것을 멈추지 말아라'라는 말을 저도 하고 싶습니다.
Q. 슬럼프 극복 방법이 있나요?
A. 슬럼프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작업하려고 강제하지 않고, 대상에서 거리를 뒀어요. 기간을 정해놓고 휴가나 여행을 즐기는 등 머릿속에서 관련된 생각을 비웠어요. 그러다 보면 다시 일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찾아왔죠. 안 되는 것을 억지로 붙잡고 하기보다는 리프레시하는 경험을 쌓았습니다.
Q. 다양한 3D 툴 중에서 현업에서는 어떤 것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무엇을 미리 준비하면 좋을까요?
A. 축구 선수가 달리기를 잘 해야 하듯, 디자이너에게 스케치는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스케치를 하지 않고 알리아스만 한다면, 제 입장에서는 좋은 디자이너가 될 수 없다고 봅니다. 떠오른 아이디어를 스케치로 재현해야 하는데, 기술이 부족하다면 그만큼 어려워지는 것이죠. 3D 모델링으로 표현할 수야 있겠지만, 그만큼 시간이 더 걸리니까요. 게다가 모델링의 경우 해당 영역에 특화된 모델러들이 현장에 있기 때문에 디자이너에게 중요도가 높지는 않습니다. 비주얼라이징에 치중해서 렌더링은 멋있게 하지만, 디자인은 별로인 상황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디자이너로 일할 거라면 3D 프로그램은 메인이 아닌 부수적인 요소입니다.
디자이너에게는 생각하는 것을 손으로 스케치해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나중에 협업하는 모델러 등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스킬이 중요해요. 디자이너 입장에서 스케치를 중요하게 보는 이유는 거기에 아이디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과물을 잘 만들어낼 전문 모델러들은 따로 있고, 디자이너는 굳이 모든 모델링을 다 잘할 필요가 없어요. 단순히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 정말 새로운 아이디어와 컨셉이 담긴 스케치가 필요하죠.
마지막으로, 정우성 디자이너는 본인처럼 해외 취업이나 외국계 브랜드 디자이너를 꿈꾸는 지망생들을 위한 조언을 남겼습니다.
"일단 영어는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소통하는 방식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을 키워야 해요. 저는 학교에서 그림 연습과 프로젝트에 매진했기 때문에 그림 실력은 다른 디자이너에 비해 월등했지만, 그림을 높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거나 다른 디자이너와 그림에 대한 토론을 할 때, 상대를 설득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토론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한국의 문화와도 연관이 있겠지요.
아무리 잘 그려도 설득이 되지 않으면 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자동차 디자인 업계에서는 모든 것이 경쟁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그림만 잘 그리는 디자이너가 되기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고 그 컨셉 스케치와 함께 발표가 가능한 디자이너가 되어야 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미지만 찾아보기보다는 독서, 토론, 교수님과의 소통 등을 통해 능력을 갖출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