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결국 ‘이해하는 일’이다.

디자인은 예쁘게 만드는 일보다 먼저, 사람이 무엇을 보고 어떤 순서로 정보를 이어 붙이는지, 그리고 어떤 감정의 기준에서 결정을 내리는지를 읽어내는 일이다. 우리는 흔히 디자인을 ‘표현’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표현은 결과다. 그 앞에는 반드시 ‘해석’이 있다. 사용자가 화면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찾는 단어, 한 번의 스크롤에서 기억에 남는 요소, 한 장의 포스터를 보고 “왠지 믿음이 간다”라고 느끼는 그 찰나. 그 순간을 만드는 힘은 화려한 기교가 아니라 이해의 정확도에서 나온다.
사람은 정보를 ‘읽지’ 않고 ‘엮는다’

사람은 문장을 끝까지 읽고 판단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조각난 힌트를 모아 자기 방식으로 의미를 완성한다. 제목 한 줄, 이미지의 방향, 버튼의 위치, 간격의 리듬. 이 작은 단서들이 “여기는 안전한 곳”, “이건 광고”, “이건 내가 해야 하는 행동” 같은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디자인의 핵심은 ‘정보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가 연결되는 길을 설계하는 것이다. 무엇을 먼저 보여줄지, 무엇을 나중에 알게 할지, 무엇은 아예 숨길지. 디자이너는 화면이나 종이를 채우는 사람이 아니라, 사용자의 머릿속에서 의미가 생성되는 경로를 만드는 사람이다.
사람의 선택은 논리보다 ‘감정의 상태’에서 먼저 일어나기도 한다

사람은 합리적으로 선택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감정의 상태가 먼저 방향을 잡는다. 피곤한 날엔 복잡한 정보를 피하고, 불안한 순간엔 확실한 신호를 찾는다. 반대로 여유가 있을 땐 탐색하고 비교한다. 같은 제품, 같은 문장이라도 사용자의 감정 상태가 다르면 결과는 달라진다. 그래서 디자인은 “무엇을 전달할까?”만 묻지 않는다. “이걸 마주하는 사람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를 먼저 묻는다. 온보딩이 친절해야 하는 이유, 결제 화면이 단순해야 하는 이유, 에러 메시지가 차분해야 하는 이유는 전부 하나다. 사람의 감정이 흐트러지면 판단도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는 ‘보이지 않는 맥락’을 시각언어로 번역한다

진짜 어려운 건 눈에 보이는 레이아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맥락, 브랜드가 쌓아온 신뢰, 사용자가 가진 선입견, 사회적 분위기, 구매 직전의 망설임 이것들을 읽어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걸 형태, 질감, 속도, 무게감 같은 감각적 언어로 바꿔야 한다. 맥락을 번역하는 방식은 때로는 “여백”으로 나타나고, 때로는 “단어 선택”으로 나타난다. 같은 ‘확인’ 버튼도 어떤 서비스에선 단호해야 하고, 어떤 서비스에선 따뜻해야 한다. 그 차이는 취향이 아니라 이해의 차이다.
좋은 디자인은 ‘이해력의 깊이’에서 시작된다

좋은 디자이너는 손이 빠르기 전에, 관찰이 깊다. 트렌드를 따라가기 전에, 사용자의 이유를 따라간다. “사람들이 좋아하니까”가 아니라, “사람들이 왜 이 순간에 이 선택을 하는지”를 해부한다. 그리고 이해가 깊을수록 디자인은 이상하게도 조용해진다. 불필요한 장식은 사라지고, 설명은 줄어들고, 대신 사용자는 더 쉽게 움직인다. 그게 좋은 디자인의 특징이다. 보이지 않지만, 정확하게 작동한다.
이해하는 디자인을 위한 세 가지 질문
마지막으로, 디자인을 시작할 때 스스로에게 던질 질문을 남겨본다.
1. 이 사람은 지금 무엇을 ‘확인’하려고 여기까지 왔나?
2. 이 화면, 포스터, 패키지를 보는 감정의 상태는 무엇일까?
3. 이 맥락을 단순한 시각언어로 번역한다면,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남길까?
디자인은 결국 이해하는 일이다. 사람이 어떻게 정보를 연결하고, 어떤 감정에서 결정을 내리는지를 읽어내는 일.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맥락을 시각언어로 번역하는 순간, 디자이너의 작업은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좋은 디자인은 재능이 아니라, 이해력의 깊이에서 시작된다.
Shaun 작가소개
2000년 대 초반 웹 디자인으로 시작해 스마트폰이 등장한 뒤, 모바일 UI·UX 디자인을 하며 성장했고 이후 브랜드 디자인까지 영역을 넓혔다. 크고 작은 에이전시, 인하우스 등의 조직에서 주니어 디자이너부터 시니어 디자이너, 팀장 등 여러 포지션을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 우수디자인(GD)상품선정 등 국/내외 디자인 어워드에서 여러 차례 수상한 경력이 있다. 디지털 에이전시에서 렉서스코리아, 하이트진로, 할리스커피, 풀무원, 인텔코리아, 삼성전자 등 30여 개의 디지털 브랜드 작업을 진행했고 지금은 인하우스 디자인 조직에서 브랜드 디자인 전반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