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웹툰으로 세계를 잇다, ‘순천에서 피어난 4인의 창작 스토리’(4)
지난 몇 달 동안, 세계 각지에서 모인 네 명의 아티스트들이 순천에서 머물며 서로 다른 언어와 감성을 웹툰이라는 공통의 언어로 풀어냈는데요. 그 여정의 마지막 주인공은 프랑스 마르세유를 기반으로 활동 중인 웹툰 작가이자, 웹툰 스튜디오 공동 창립자인 샤를 마날트입니다. 이미 유럽 현지에서 활발히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익숙했던 작업 방식에 한국형 연출과 디지털 드로잉 툴이라는 새로운 요소를 더하며, 창작자로서의 시야를 한층 넓혔다고 전했는데요.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어떤 탐색과 고민, 실험이 이어졌을까요? 순천에서의 창작 여정을 통해 샤를 마날트 작가가 경험한 그 특별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만나보시죠.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프랑스에서 온 36세 샤를 마날트(Charles Manalt)입니다. 프랑스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및 웹툰 제작 전문 기업 Tale(Myrà Studio라는 이름으로 활동)의 공동 창립자이며, 현재 프랑스에서 4개의 웹툰 시리즈에서 작화 또는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 중입니다.
Q.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웹툰 작가로서, 한국의 웹툰 스타일과 제작 과정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한국에 오기 전부터 웹툰 작업을 해왔지만, 제 작업은 프랑스의 그래픽 문화에 기반한 매우 개성 있고 실험적인 접근 방식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대중보다는 소수의 독자층을 겨냥한 콘텐츠가 많았고요.
그러던 중 한국 웹툰을 접하면서, 그 안에 전 세계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강력하고 효율적인 시각적, 서사적 코드가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더 넓은 독자층과 소통하고자 하는 작가로서, 이 형식을 더 깊이 이해하고 배울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Q. 한국 작가들과 함께 웹툰을 제작해보며 느낀 기존 작업 방식과 차이점이 있다면요? 또, 웹툰 제작에서 실질적인 성장이 있었나요?
프랑스와 한국 모두 웹툰 제작 과정 자체는 기획, 시나리오, 스토리보드, 펜 터치, 채색 등 전체적인 흐름에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그래픽 스타일’입니다. 한국 웹툰에는 명확한 미적 기준과 규칙이 있으며, 이를 익히기 위해선 상당한 학습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한국 작가 및 교육자들과 협업하면서 선을 단순화하고 감정 표현을 강조하는 방식, 모바일 화면에 최적화된 가독성을 확보하는 노하우 등을 직접 익힐 수 있었고요. 꾸준한 훈련과 피드백을 통해 컷 구성과 표현력이 점차 향상되는 것을 체감했고, 이는 제 작업에 있어 매우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Q. 프랑스에서도 웹툰 교육을 받으셨는데요, 한국의 웹툰 교육과 어떤 차이점이 있었나요?
프랑스에서의 웹툰 교육은 주로 이론 중심이었습니다. 실습도 있었지만, 오전에는 강의, 오후에는 피드백 위주의 개인 작업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반면, 한국의 교육은 보다 실전 중심이었습니다. 단순히 그림이나 서사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 웹툰 시장의 특성을 이해하고, 실제 한국 독자층을 대상으로 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파일럿 에피소드를 완성해 ONO KOREA에 제출하는 과정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전라남도 순천이라는 지역적 특색 덕분에 한국 문화를 현지에서 체험하고 이를 창작물에 녹여낼 수 있었던 점도 인상 깊었습니다. 케나즈 본사에서 진행된 실무 교육, 김시호 교육자님의 꾸준한 피드백, 현지 작가분들과의 지속적인 교류 또한 제 작업에 있어서 큰 자극이 되었고, 발전할 수 있었던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Q. 해외 작가들도 한국의 웹툰 제작 스타일에 적응할 수 있을지 궁금한데요,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한국 웹툰은 모바일에 최적화된 가독성과 유연한 스토리 전개, 그리고 감정 중심의 표현을 기반으로 합니다. 이러한 서사 구조는 매우 보편적이며, 글로벌 시장에서도 충분히 통용 가능한 시각적 언어라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외국 작가들도 충분히 적응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기존 창작 습관을 벗어날 수 있는 ‘용기’와 ‘사고’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외국 작가들은 복잡한 세계관과 디테일이 강조된 그림체를 선호하는 반면, 한국 웹툰은 간결한 표현과 감정 전달의 효율성을 중시합니다. 그 차이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결국 본질적인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역량을 기르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답니다.
그리고 제가 드리고 싶은 조언은 간단합니다.
"웹툰을 많이 읽고, 분석하세요."
단순히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장면 구성, 연출의 리듬, 수직 스크롤의 활용 방식, 독자의 몰입을 유도하는 장치들을 직접 분석해보는 것인데요. 이 과정은 매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한국 웹툰의 강점을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Q. 주로 사용하는 장비 등의 작업 환경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세요.
저는 재택, 회사 사무실, 출장 등 다양한 장소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환경에 따라 사용하는 장비가 조금씩 다릅니다.
- 재택 환경: 작업 전용 공간이 따로 있으며, 타사 타블렛과 듀얼 모니터를 사용합니다.
- 회사 사무실: 와콤 신티크 22HD(Wacom Cintiq 22HD)와 보조 모니터를 사용합니다.
- 출장: 와콤 모바일스튜디오 프로 16(Wacom MobileStudio Pro 16)을 사용합니다.이 장비는 고성능의 PC 기반 작업이 가능해 어디서든 안정적으로 창작이 가능합니다.
저는 고정된 작업 루틴은 없지만, 언제 어디서든 항상 몰입 가능한 작업 환경을 만드는데 집중하는 편입니다. 효율적인 환경이 창작의 몰입도를 높여주기 때문이랍니다.
Q. 좋아하는 한국 작가나 스튜디오가 있으신가요? 인상 깊게 본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한국 작가나 스튜디오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넷플릭스에서 『지옥(Hellbound)』을 접한 후 큰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이 ‘부산행’ 연상호 감독의 시나리오와 최규석 작가의 그림으로 구성된 웹툰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원작 웹툰도 곧바로 찾아 읽었는데요, 초자연적 공포와 사회 비판, 종교적 메시지와 대중 심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유기적으로 엮인 서사가 매우 인상깊었습니다. 그래픽 스타일 역시 매우 강렬하고 몰입감 넘쳤고요.
이 작품을 통해 웹툰이라는 포맷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서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매체임을 실감했고, 한국 웹툰에 대한 관심도 더 커졌습니다.
Q. 앞으로 실현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나 작업 계획이 있다면요?
저는 현재 다양한 프로젝트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 프랑스 네이버 웹툰: 프랑스 대혁명(1789)을 배경으로 한 역사 웹툰
- 스팀펑크 세계관의 시리즈: 《Nemu》 매거진에 연재 중
- ONO KOREA와의 신규 프로젝트: 곧 연재 예정
이 외에도, 저는 웹툰 산업 전반의 발전에도 기여하고 싶습니다. 현재는 공공 및 민간 자금을 유치해 스튜디오의 동시 제작 규모를 확장하는 데 집중하고 있고, 장기적으로는 창작팀을 조직하고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는 ‘제작자’로서의 역할에도 집중하고자 합니다.
웹툰은 집단 창작과 협업을 통해 더욱 완성도 높은 콘텐츠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러한 구조를 통해 더 많은, 좋은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순천에서 피어난 4인의 창작 스토리’는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작가들이 웹툰이라는 공통의 언어로 소통하며 완성한 특별한 기록이었습니다. 샤를 마날트 작가의 말처럼, 한국 웹툰은 단순한 그림과 이야기 그 이상으로, 명확한 시각 언어와 효율적 서사 구조를 바탕으로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데요. 이번 순천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웹툰의 진가를 직접 체험한 네 명의 창작자들을 비롯해, 앞으로도 세계 각지의 웹툰 작가들이 국경을 넘나들며 더욱 견고한 창작의 연결고리를 이어 가기를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