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워킹맘의 ‘창작자로서의 나’ 지키기
안녕하세요. 프리랜서 창작자 13년차이자 7년차 워킹맘 ‘너굴양’입니다. 일상 만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바탕으로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미술 관련 전공자는 아니고 평소에 만화와 그림을 좋아하고 혼자 끄적이는 게 취미였어요. 마케팅과 홍보 일을 하다 우연한 기회를 거치며 인생의 방향이 바뀐 셈이죠. 생각해보면 삶은 필연을 가장한 우연이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혼자 그려서 올리던 <너굴양 그림일기>가 일간지 [한겨레]에 동명의 이름으로 연재를 하게 된 것은 직장인 시절 취재원 관계로 만났던 분의 추천 덕분이었거든요.
일단, 계속, 그린다
프리랜서 창작자가 되었을 땐 주변의 많은 응원도 있었고 그에 부응하는 수요도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니 의뢰는 줄고 통장 잔고도 함께 줄더군요. 대표 작품도 없고 자기 브랜딩이 안된 초보 작가에겐 당연한 수순이었죠. 하지만 저에겐 (많은)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계속 그렸죠. 하루에 1개 이상 그림을 그려서 페이스북에 올렸어요. 모작, 습작을 하고, 글도 썼습니다. (10년 전엔 인스타보다 페북이 잘 나갔어요^^) 습작이 쌓이고 외주와 협업 작업물을 끊임없이 홍보하면서 다시 작업 의뢰가 들어왔죠. 일이 적으나 많으나 그리고 쓰는 습관은 워킹맘이 된 후에 다시 한번 빛을 발했습니다.
나를 드러내야 기회가 온다
창작자일수록 밖으로 많이 돌아다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MBTI는 I로 시작하지만 선택적 E가 되어야 하는 순간들이 오더라고요. 작업실에 앉아 내 안으로 깊이 들어가야 하는 때도 있지만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곳에서 리프레쉬 하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싶어요.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소통하는 작가분들도 많죠. 온라인 채널에 나를 알리는 건 이제 기본이 된 것 같아요. 20년차 선배 작가가 유튜브로 소통을 시작한 후 화실을 오픈해 온/오프라인 클래스로 분야를 확장하는 것을 보며 많이 배웠어요.
상황이 안될 땐 마감 속으로
아기가 태어난 후엔 작업 시간은 반토막이 났어요. 당연히 밖으로 돌아다닐(?) 시간도 없어졌죠. 저의 출산 소식을 들은 고객들은… 한동안 연락이 안 오더군요. 산후조리가 끝난 이후엔 아기를 재운 후 그림을 그리고, 남편과 육아 교대하면 또 그렸습니다. 틈틈이 홈페이지와 포트폴리오를 업데이트하고 그림을 매일같이 또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올렸습니다. 다시 일이 조금씩 생겼어요. 여전히 작업 시간은 많지 않았죠. 시간과 에너지가 조각나는 상황을 제가 바꿀 수는 없으니 저는 마감 안에 저를 몰아넣었습니다. 6개월 반 된 아기를 데리고 저희 부부는 제주에 취재하러 한 달 동안 다녀오기도 했답니다. 아기띠를 메고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으러 다녔어요. (지금은 그렇게 못할 것 같은데…그땐 그만큼 절실했거든요) 그렇게 1년 정도 버텼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마침내 ‘오롯이 혼자’되는 시간을 확보했답니다.
엄마 VS 창작자
한동안 개인 작업을 전혀 못하던 때가 있었어요. 육아-살림-외주의 쳇바퀴를 돌며 나 자신이 채워지지 않고 소모되는 느낌이 들었죠. ‘창작자로서의 나’는 이제 사라진 걸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답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하는 창작자/엄마들이 많더라고요. 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읽고, 같은 처지의 지인들과는 (만나기엔 서로 너무 바쁘니까) 메신저로, 온라인으로 소통하며 돌파구를 찾았어요. 정말 다들 애쓰고 있었어요. 사랑하고 소중한 아이를 잘 키우는 ‘엄마로서의 나’와 쓰고 그리고 만드는 ‘창작자로서의 나’ 사이에서요.
제가 지금까지 내린 결론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자주 가져야 한다는 거였어요. 내가 힘들고 무너지면 창작도 육아도 다 흔들려요. 창작자로서의 나에게 도움이 되는 시간들은 결국 아이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내가 좋아하는 전시를 보고, 음악을 듣고, 책을 보고, 산책을 하며 채워진 마음 곳간은 고스란히 나의 작업에 드러나고, 아이를 좀 더 다정하게 대하는 밑천이 될테니까요. 아이를 몇 년 키우고 보니 저는 좀 더 주변에 친절해졌고, 여유로워졌어요. 그래서 저의 그림도 글도 더 따뜻해졌다고 믿고 있습니다.
너굴양 그림일기 @nergulyang_official
스튜디오 하랑 @studiohar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