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인이 창작하는 작품이 그 시대를 빠르게 읽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는 그런 단서를 은유적으로 만들고 대중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다. 가장 섬세하게 오늘을, 패션을 그리며 시대를 사랑하는 대중들과 소통하는 패션 일러스트레이터가 있다. 음하영, 그는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적 인식조차 없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꿋꿋이 패션 일러스트레이터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
음 작가는 홍익대에서 섬유 미술,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공부를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면, 옷을 만드는 것보다, 사고 보는 게 더 좋다는 것이었다. 졸업을 앞두고 적성에 맞는 일을 찾던 중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영역을 발견했다. 그는 이 거다 싶었단다. 그러나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는 당시 국내에 역할 정도만 소개됐을 뿐, 소이 직업으로 쳐(!) 주지 않던 일이었다. 여기서 그는 용기를 냈다.
먼저 포트폴리오를 마련했다. 그리고는 평소 즐겨 읽었던 패션 잡지 에디터들에게 보냈다. 이어진 ‘보그’ 지의 콜. 일사천리로 일이 성사 된 과정이 지나치게 운 좋다 할 수 있지만, 매거진을 볼 때 단순히 화보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년 간 보그 지 에디터들의 칼럼을 꼼꼼히 읽으며 칼럼의 개성과 특징들을 간파하고, 공부했던 것이 빛을 발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도 비슷하지만 그 때만 해도 국내에 패션일러스트레이터 전업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패션 시장 규모가 해외에 비해 매우 작고, 국내는 한 명의 멀티플레이어가 다양한 영역을 소화하는 업무 시스템이 일반적이기 때문이죠. 이런저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하려면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죠.”
패션 업계에서는 실제 옷을 제작 하기 전 스케치의 용도로 활용되고 의상 디자이너들이 패션 일러스트 창작물을 보고 영감을 얻어 의상 작업에 반영하기도 한다. 또 패션 매거진 내에서는 글, 사진, 동영상 외에 삽화적인 요소를 통해 새로운 옷과 시대의 트렌드를 표현하는 역할을 한다.
음 작가는 ‘보그’의 ‘Fashion Odyssey’ 섹션을 진행하며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UK TRAVEL, HEAT MAGAZINE, TBWA, 워커힐 호텔, 대한항공, 삼성전자, LG전자, 더 샘 등을 클라이언트로 함께 두고 매거진, 제품 등을 바쁘게 넘나들며 6년 째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와콤 아트 펜, 실제 붓을 들고 도화지 위에서 춤추는 느낌
음 작가는 17년 째 와콤 태블릿을 사용하고 있다. 다른 브랜드는 사용해 본 적이 없다. 호기심에 처음 와콤 태블릿을 구매했다가, 데뷔 후 없어서는 안될 작가의 오른팔이 돼버렸다. “와콤 태블릿은 늘 진화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만족스럽다 싶은 데, 그 다음 모델에서는 더 만족스러운 기능, 성능을 제공해서 깜짝 놀라게 해요. 그래서 현재 쓰는 제품도 100% 만족하지만 다음 버전이 늘 기대돼요. 또 어떤 걸로 나를 놀라게 할지 말이죠.”
그는 현재 신티크21UX를 사용한다. 신티크의 섬세한 입력, 서브 모니터로 활용 가능, 연습장에 그리는 것과 비슷한 효과, 눈의 피로감이 적은 화면 등도 매력적이지만 그 무엇보다 와콤 태블릿의 결정체인 아트 펜에 푹 반했다. “실제 붓을 들고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느낌이에요. 그 손 맛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를 거에요. 특히 와콤 아트 펜은 포토샵의 새로운 버전인 CS5에 꼭 필요한 도구에요. CS5 업그레이드의 핵심은 전혀 새로운 브러시 효과와 기능들이 추가 되었는데 와콤 아트 펜만큼 이 작업을 잘 소화할 수 있는 제품은 세상에 없을 거에요.”
그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작업대에 앉아 시연을 했다. 포토샵 CS5의 믹서 브러시 모드를 활용해 캔버스 모니터에 두 색상을 섞었다. 믹서 브러시 모드는 현실에서 페인팅을 시뮬레이션 하는 페인팅 모드다. 물감의 양과 브러시의 촉촉한 정도, 물감들의 혼합 률 까지 세밀하게 조정해 수채화에서 유화에 이르기까지 현존하는 모든 페인팅 환경을 제대로 구현해 낸단다. 음 작가는 CS5로 버전 업 하면서 색상이 물감처럼 섞이는 속도와 번지는 느낌까지 화면 상에 구현되는 포토샵 CS5와 신티크, 아트 펜의 앙상블에 푹 빠졌다. 그래서 어도비 홈페이지를 수시로 드나들며 브러시 기능을 깊이 있게 공부했고, 내친 김에 책도 냈다.
국내 최초 포토샵 브러시 기능 전문 서적 출간
“기존 포토샵 버전에도 물론 브러시 기능이 있었죠. 그러나 CS5버전처럼 방대하지 않았어요. 또 일반 포토샵 매뉴얼 서적에서도 브러시는 몇 페이지에 압축되어 소개되고 마는 게 늘 아쉬웠어요.” 최근 음 작가가 출간한 ‘일러스트레이터를 위한 포토샵 CS5 더 브러시 북’(디지털 북스)은 554페이지에 걸쳐 브러시 기능과 설정에 대한 설명과 시연, 응용이 바글바글하다. 여기에 태블릿 사용법, 특별한 드로잉 효과, CS5의 새로운 기능 등도 자세히 다루고 있어 CS5로 작업하는 모든 사용자가 마우스 옆에 두고 살펴보면 좋을 매뉴얼 북이다.
패션 일러스트레이터, 음하영
최근 그는 영국 레모네이드 일러스트레이션 에이전시 소속 작가로 활동 중이다. 에이전시 계약 후 유럽을 비롯한 다국적 클라이언트들과 작업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영국 에이전시 소속도 ‘보그’ 지 입봉 때처럼 먼저 포트폴리오를 보내고 자신을 알렸다. “국내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면서 바로 해외로 눈을 돌렸죠. 미국, 유럽 등지에서는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이 시스템화 되어 있고 시장 규모도 매우 커요. 에이전시 소속 작가가 되면 클라이언트 관리 등을 맡아 주기 때문에 작업에만 더욱 충실해 질 수 있어요. 또 글로벌 브랜드의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이었죠.”
예술적 재능 있는 젊은 친구들이 창작활동을 본업으로 갖고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알려달라고 주문했다. 그랬더니, 세 가지 도구를 댄다. 명함, 포트폴리오, 홈페이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잘 알릴 수 있어야 해요. 능력과 근성은 기본이에요. 좋은 능력을 갖고 있어도 상대방이 모르면 직업이 되기 어려워요. 기본을 갖춘 상태에서 자신을 잘 알릴 수 있는 도구와 능력을 기른다면, 반드시 꿈을 펼칠 수 있어요.”
다양한 글로벌 클라이언트들과 함께 국내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를 사회에서 호명되는 직업으로 단단히 굳히고 있는 음하영 작가, 그의 꿈은 “끝까지 작가로 남고 싶다” 였다.